茶는 대화를 낳는다"
행자시절, 스님 방을 청소하다가 얼핏 본 책의 기사였다.
사실 그때는 차를 좋아하지 않았다. 오히려 차 마시는 시간은 내게
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.
새벽 3시반, 눈을 부비며 일어나 목탁을 치면서 사람들을 깨운다. "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"
그렇게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는 선무도 운동을 마치고 밤 9시가 다되어 끝나곤 했다.
사범님들은 유독 밤에 마시는 차를 좋아하셨다.
그 시절 내가 하루에 마셨던 차가 PT 2병이었던 것 같다. 그렇게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.
"행자님, 참 그 나이 부럽다. 25살.. 나도 10년 전 그 나이였다면 이곳에서 행자생활 함 해봤을텐데.."
잠은 항상 모자를 수 밖에 없었지만, 많은 대화가 오갔던 그 시간은 즐거웠다.
그 대화 속에서는 나태해지는 나에 대한 강한 일갈도 있었고, 격려도 있었다.
가난한 사범님들과 마실 때는 그리 좋은 차를 마시진 못했지만,
6개월 간의 행자생활은 茶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게 해주었다.
<上: 서사범님,下: 철안스님>
차를 마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.
근데 하산하고 다시 속인이 되니 가까이에는 차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. 그래서 차 마시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멀리 서울 양재까지 가서 茶모임에 참석했다.
그리고 가까운 곳에 茶모임을 만들고 싶었다.
동아리에 다관과 茶를 구비하는데 쓴 돈만 해도 30만원 가까이는 될 것이다..
많은 茶시간을 만드는 것. 쉬는 시간마다 茶를 마시고, 대화를 즐길 수 있는 택견 동아리로 만들고 싶었다.
그리고 茶로 동아리방에서 게임이나 공부만 하다 가는 곳이 아닌 대화가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.
<양재 TeaSharp에서 석혜각 스님과 함께>
아쉽게도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은 동아리에 없었던거 같다. 내 자질이 부족하다는게 문제였겠지만.........
다행히도 해동검도의 96학번 선배는 이런 나의 마음을 잘 아는지 나의 茶벗-내가 만든 말. '다우' 보다는 벗이라는 말이 더 정감있지 않은가?해서-이 되어주었다. 최소한 택견동아리 후배들 억지로 앉혀놓고 차를 마시게 했던 것 보다는 즐거웠다. 지금 와 생각해보면 맛없는 차, 맛없게 우렸는데도 맛나게 먹어준 그 선배에 대해 고맙다.
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있다. 그리고 열정만 가득했던 나는 또 다른 슬픈 '그라쿠스'가 될 수 밖에 없었다.
내겐 열정만 가득했지 사람들을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없었다. 그래서 내 원대한 계획-동아리에 茶문화를 전한다-은 수포로 돌아갔다.
그러다 석문호흡에서 차를 마셨다.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바랬던 '대화'가 담겨 있었다.
철우형에겐 미안하지만, 호흡수련보다 수련 후 마시는 茶시간이 더 좋았다. 아니 그 속에 담긴 대화가 좋았다.
나이 60넘은 할머니와 나이 20대 중반 청년이 얼마나 대화를 공유할 수 있겠는가? 하지만 차는 묘하게도 마음 속에 쌓아놓은 벽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대화에 빠져들게 한다. 그래서인지 술마실 때 가끔 생기는 감정의 상처따윈 없다.
술 먹다 싸움났다는 말은 들어봤어도, 아직 차 먹다가 싸움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.
<석문호흡 부평점 찻상>
애별리고(愛別離苦)-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어 괴롭다.
차를 마시게 되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.
가까이는 차나무 사장님인 범주형, 철우형에서 멀리는 다헌정 경인모임長 이정현님까지 언제나 그 분들과의 만남은 기다려지고 그립다.
특히 정현 님. 단지 차 몇잔 마시고 술 한잔 간단히 걸친 것뿐인데, 작은 이야기 큰 이야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. -정말 장가가면 저런 사람 만나야 되는데, 할 정도의 매력과 내공을 느꼈다. 한 살 밖에 차이 안나는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.-
그래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고 기다려진다.
내 재테크는 茶
범주형 茶나무를 보면 많이 아쉽다. 범주형의 茶나무는 분명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.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기회를 만나지 못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.
여러 종류의 비싼 茶들을 쉽게 시음하게 해주고, 그 속의 대화에는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다.
그래서 최소한 '이 사람은 정말 정직하게 茶를 파는 구나' 하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. -이건 나같은 초보자가 보이차와 같은 중국차를 구입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- 이 믿음이 발전해 브랜드가 된다. .
범주형과 茶를 함께 하는 동안, '스타벅스'를 발굴한 '하워드 슐츠'와 같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. 다만 차이는 그 사람은 사업을 볼 수 있는 내공과 배짱이 있었고 나는 아직 없다는 것.
그래서 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차를 마시고, 대화를 나눌 것이다. 그리고 그 만남에서 범주형 茶나무의 성공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할 생각이다.
10년 후 더 많은 대화와 즐거움 그리고 크고 작은 성공들을 꿈꾸며~
덧말 : 홀로 2시간 동안 보이차랑 우롱차 먹고 오줌 마려워 죽겠는데 동생이 화장실에서 안 나온다.젠장-_-